2013. 7. 5. 00:30ㆍLearned
7월 4일
포항 한동대 기숙사
"매일 35분 이상씩 TED 등의 강연을 보고, 나의 언어로 강의내용을 정리하며 의미를 찾으며, 나의 삶에 적용하고자 노력하여 크고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간다."
오늘 블로그를 쓰기 전, 나는 다소 흥분된 상태로 이 훌륭한 강의를 추천하고 싶다.
http://www.ted.com/talks/ken_robinson_says_schools_kill_creativity.html
위의 링크를 타고가 19분 짜리의 창의력과 현교육체계에 관한 그의 훌륭한 강의를 들어보라
Ken Robinson은 '아이들의 창의력'과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자(Educator)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형태로 행해지고 있는 공교육의 체계가 아이들이 지닌 놀라운 창의력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교육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망친다.'는 이야기는 흔히 듣던 말이다. 새로울 것 없는 그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실제로 TED에서 그의 강의는 'Persuasive'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어있다.) 매우 적절한 예시들을 들어 위의 주장이 결코 식상한 구호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임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연 중간에 그는 말한다. 셰익스피어에게 아버지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즉 셰익스피어에게도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그는 그 시기에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심지어) 영어수업을 듣기도 했었다. 그는 아마도 이러한 소리들을 지겹게 들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그런 식으로 영어를 사용하면 안되지!", "셰익스피어, 좀 더 열심히 공부해라.", (그는 영어에서는 관용구로 통하는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지닌 단어/문장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릴 적에는 그 모든 시도들은 좋은 점수를 받는데에는 결코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들아, 이제 그만 펜을 놓고, 다른 공부들도 하지 않겠니?", "누가 그런 식으로 말하랬니? 네 말은 모든 듣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구나!", "어서 들어가 자렴." 등등의 획일적인 공교육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진심어린 훈계'들을 그 역시도 들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셰익스피어에게 그러한 훈계는 적절한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 날, 바로 지금 그러한 훈계를 듣고 있는 아이들이 훗날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강연자인 Ken Robinson은 말한다. 왜 전 세계의 모든 공교육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가. 왜 수학이나 과학이 교육체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점하고 있으며, 반대로 왜 예술은 가장 낮은 곳에서 교육되고 있는가. 이러한 계층은 예술 분야 내에서도 뚜렷히 나타나고 있는데, 왜 미술이나 음악은 드라마나 댄스보다 더 높은 계층에 있는가. 드라마나 댄스 분야는 왜 더 천시받고 있는가.
왜 공교육은 수학을 가르치는 만큼, 아이들에게 춤 추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가. 예술을 배우고,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교육들만큼 제공하지 않는가? 그러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나? 사람이란 예술을 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데? 몸은 단지 '머리'를 움직이는 수단일 뿐인가?
예술적으로 비범한 아이들은 그리 비범하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환경에 놓여져 교육받고, 위에서 말한 훈계들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특별한 재능을 일찍이 발견하고, 그 재능을 사용하도록 장려받은 차이를 지닌다. 그 아이에게만 있는 천재적인 재능이 아닌, 누구에게나 있는 자신만의 재능을 '발견하고 장려받은 기회'가 평범할 수 있었던 한 아이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좋아하는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의 안무를 담당한 질리안 린은 어린시절 그녀의 독특한 재능을 알아본 의사선생님의 덕에 안무가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위대한 잠재력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어려서 학습장애라는 '병'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녀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기 때문에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를 걱정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아마도 신경과) 의사에게 데려갔다. 그 의사는 어머니의 얘기를 듣더니, 린에게 '어머니와 깊은 얘기를 해야하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켜놓고 방을 나왔다. 그리곤 린의 어머니와 함께 혼자 남겨진 린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녀는 공교육이 진단하고, 어머니가 걱정한대로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그는 대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이 아이는 학습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댄서 입니다. 춤을 출 수 있는 학교로 보내십시오.'
바로 이것이 그 날 의사가 린에게 내린 최종 진단이었다. 훌륭한 안무가가 된 질리언 린에게 'ADHD'라는 진단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그가 훌륭한 안무가로 인정받기 한참 전이었던 어린 시절이었을지라도.
"모든 아이들은 창의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만, 그들이 자라면서 그 창의력을 유지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 피카소 -
19세기 이전, 그러니까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그 영향력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이전에, 세상에 지금과 같은 공교육은 없었다고 한다. 공교육이란 산업사회의 수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것이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그러나 매우 사실적으로, 공교육은 1. 회사에 적합한 직원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2. 대학들과 그 곳의 교수님들이 자신의 모습을 본 떠서 만든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려고 하지말라고 권한다. 1. 안정적인 보수를 주는 직장에 들어가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그리고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2.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국 그 아이의 삶을 위한다는 것은, 그 아이의 대입과 취업을 위하는 것과 동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Ken Robinson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대학 졸업자들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더 많아 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졸'이라는 학위의 가치는 점차 없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닌게 아니라, 점차 학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던 회사들이 어느새 석사 이상의 학위를, 석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하던 곳에서 이젠 박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러한 학력 인플레 속에서 공교육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지성이란, 1. 다양하며, 2. 역동적이고, 3. 매우 독특(distinct)하다.
창의력이란 가치를 제시할 매우 독특한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이며,
이러한 창의력은 '서로 다르게 발달된 다양한 관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 산업혁명의 부산물들은 많은 부분에 있어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쪽으로 흐른다. 아무런 문제의식과 새로운 가치에 대한 제시 없이 '좋은 직장'이 모든 아이들과 그들을 양육하는 부모들의 목표가 되어서는 인류의 미래는 참 어둡기만 하다. 이제껏 인류가 이끌고 장려해왔던 산업혁명 이후의 개념들을 재정립할 수 있는, Ken Robinson의 말에 의하면 '인간생태계를 고려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미래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은 획일적인 공교육이 아닌, 아이들의 무한한 창의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나의 비전은 교육자이다. 교육도시를 설립하는 것. 제 3세계에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연간 200명 정도 조건없이 데리고 와, 어릴 때부터 그들의 탤런트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통해 그들이 각 분야에서 높아지기보다는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 이것이 내 삶에서 내가 이룰 나의 사명이다. 나아가 그 아이들이 내가 한 것과 같은 '교육도시'들을 곳곳에 설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교육에 대한 이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교육이란 어려운 듯 싶다가도 참 쉬운 것 같기도 하다. '너는 소리를 듣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구나'라는 선생님의 한 마디 말이, 여전히 앞을 볼 수 없지만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전설적인 가수, 스티비 원더를 있게 하였다. 이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은, 그의 담임선생님이 지닌 훌륭한 교육관과 (명확히 교육이라는 범주에 속한) 그의 한 마디 격려 덕분이었다.
나는 어떤 교육관을 가져야 하는가. 그리고 내가 가진 교육관을 과연 어떻게 실제적인 교육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비록 이제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내 안에 있는 창의력들을 어떻게 유지하고 나아가 계발할 것인가. 어떻게 산업혁명 이후의 '안정적 삶'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여러 '진심어린' 조언들 속에서 나를 나답게 지켜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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