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6. 07:07ㆍDiary
2018.07.15.
South Coast Plaza
나는 가치 있는 변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학부 시절 수년간의 멘토링을 통해서 한 아이의 삶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고는 '관심과 응원'의 힘을 경험했다.
그래서 한 단체를 만들어 지역사회의 소년소녀가장, 불우한 아이들과 내가 속한 대학교의 청년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열 몇 군데의 지역아동센터와 돌봄센터를 다녔고 40여명의 멘토 멘티들을 연결하여 작은 변화를 시작했다.
대학교 내의 여러 동아리들이 만들어 내는 수준 높은 컨텐츠들이 우리 안에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쉬워서, 지역아동센터와 동아리를 연결하는 일을 했다. 단기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단기간에 많은 아이들이 함께했기에 무척 행복했다.
그런데 나의 변화는 단기간에 끝났다.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스스로 진단해보면 나를 사로잡던 '가치'가 어느새 바래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나에게 '이것이 정말 현실적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확히 말해 힘을 잃기 시작한 순간은 내가 잘못되었다고 '결정한 시점'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한 시점'이었다. 물 위를 걷던 자가 바람과 파도에 넘어졌던 것 처럼, 가치 위에 있던 내가 현실을 보기 시작하자 넘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넘어졌다. 그리고 소위 취업 준비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취업 준비가 '넘어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것이 넘어짐 같았다.) 단체 운영을 인계하고, 병행했던 찬양사역을 그만두었다. 학업에 집중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내가 한 모든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인정한 꼴이었는지 모른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다
넘어졌으면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 다시 그 길로 걸어가야 하는데, 나는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길로 다시 가는 대신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있어보니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꽤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마치 뒤쳐진 것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뒤따라 걷고 있었다. 또 더러는 전혀 다른 곳으로 걷거나 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다보니 그들은 어떤 에스컬레이터 같은 곳 위에 서 있었다. 마치 지하철이나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처럼 보였다. 그들은 그 에스컬레이터 덕분에 남들보다 더 빠르게 걸어갈 수 있었고 다른 어떤 곳보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도 그 에스컬레이터 위에 발을 얹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영어 성적도 만들고 여러 지원서들을 작성해서 그 위에 올라탔다. 참 편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박수 받는 듯한 느낌. 적어도 난 뒤쳐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위에서 세상을 보니 세상이 빠르게 지나갔다. 때로는 '어?'하게 만드는 지점도 있었다. 내가 바라봤던 '가치'있는 무언가를 다시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그 지점은 빠르게 사라져 지나갔고 또다른 뉴스와 이야기들이 이내 내 관심을 독차지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씩 '어?'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 의미를 생각하기에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너무 빨랐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모두가 함께 가고 있기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의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가끔 '어?'하게 만들었던 지점에서 내가 했어야 하는 고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달리는 차안에서 방향을 인식하고 방향을 조정하기란 무척 어렵다. 네비게이션이 없다면 더 어렵고, 표지판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다면 더더욱 어렵다.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달리는 속도 때문에 그 기준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은 도로 위 표지판과는 달리, 여유와 성찰이 있어야만 보이기 때문에 달리는 차 안에서는 결코 그런 여유와 성철의 기회를 갖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잠시 내리기로 결정한다. 어디로 가는지를 좀 알아야겠다.
나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정말 '속도'였는지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
잠시 내려서 '어?'하게 만드는 지점을 찾고 그곳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며칠이 되었든지 좀 머물러 살펴 보고 싶다.
나는 왜 그 앞에서 '어?'했던가. '어?'를 통해 만들어야 하는 변화는 또 무엇이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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