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삶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삶

Song by Peter 2018. 7. 16. 09:43

07.15.2018

South Costa Plaza


집에서 직장까지 약 20분이 걸린다. TED 같은 강연을 듣기 딱 좋은 시간.

이제까지는 출근시간을 특별히 활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근래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십오분) 를 듣는다. 

처음엔 TED를 듣고 싶었는데 운전하면서 내용을 이해할 자신이 없다. (그래. 사실 운전 안해도 다 이해 못한다.)


마침내 기타를 연주해내고마는 사람의 두 가지 특징


그런데 오늘 강의는 꽤나 큰 인상을 주었다. 제이라이프스쿨 이민호 대표님의 강의였다.

운전하느라 영상은 못봤는데 시작부터 들려오는 청중들의 커다란 함성. 운전하다가 깜놀.

나중에 보니 훤칠하신 미남이었다. 외모뿐만 아니라  강의 내용과 전달력이 참 좋았다.


강사분은 청중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이 중에 기타를 칠 줄 아시는 분 계신가요?” 소수의 사람이 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럼 이중에 기타를 배워 보신 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을 것이다.


강사분은 자신도 후자의 부류라고 했다. 배우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배우다보니 손이 너무 아파서 잘 안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왜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는 중에, 누군가는 그 아픔을 딛고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연습하고, 마침내 연주를 잘하게 되는 것일까요?”


강사분은 마침내 연주해내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첫 째, 그들은 꼭 기타를 연주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둘 째, 그들은 꼭 기타로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다. 


그리고는 무척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은 삶에서 기타라는 악기를, 아니 삶이라는 악기를 연주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참으로 힘있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나의 삶을 연주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한 명, 두 명,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한 가지 깨달음이 들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왜 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는가’하고 힘들어하기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연습이 충분히 되지 않은 곡, 실수가 가득한 곡은 낯선 사람 앞에서 연주되지 않는다


기타를 배우는 중에 실수가 가득한 연주로, 일면식 없는 청중들을 앞에 두고 자신만만 연주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적어도 그런 사람을, 그런 연주를 이제껏 보지 못했다. 반면에 실수가 가득한 연주라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훨씬 편하게 연주할 수 있다. 그들은 나의 실력이 아닌 노력과 과정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개는 그렇게 실력을 쌓아간다. 그러다가 한 곡을 소화할 실력이 쌓이면 그제야 낯선 청중 앞에 서기도 하며 무대 경험을 쌓는다.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 이와 같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이라는 악기를 아직 잘 연주하지도 못하면서, 충분한 연습을 해보지도 못했으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앞에 서려하는가. 마음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때로는 도리어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미완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가. 왜 그렇게 우리의 하루를 힘든 시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가. ‘삶이란 원래 그런거’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들만 하며 살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면 그 말도 맞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래왔으니까. 그러나 정말 그런가? 다른 경우는 없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실력을 쌓고 그 후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연주를 선보이고 연주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풀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삶이라는 악기를 정말 누구보다 잘 연주하고 싶다.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고, 연주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다.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넘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나만의 연주와 메시지를 통해 감동을 주고 싶다. 나아가 많은 무대에도 서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초보다. 실수가 많고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내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대해 힘들어 하고,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제대로된 연습을 방해받고 있다면, 그래서 그 결과 ‘나는 왜 상처 받고 있는가. 왜 나는 그들을 위해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라며 힘들어하기만 한다면, 나는 연습과 격려들로 채워져야 할 초보 연주자로서의 시간을 그저 괴로워하는데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S. 현재 나의 경우가 이렇다는 건 아니지만… 혹 이런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난이도 하의 곡을 꽤 괜찮게 연주하고 있는 나에게 박수쳐주는 사람이 있을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 시간의 대다수를 소유하고 있는 고용주라고 가정해보자. 나는 시간이 지나 난이도 중상의 곡을 연주하고 싶은데, 난이도 하에 머무는 연주를 하루 종일 요청 받는다. 누군가는 해야할 연주이기에 난이도 하의 곡을 연주한다. 그 곡을 연주해야할 담당 인턴이 존재함에도 ‘이것 봐. 그 사람은 이 곡은 연주하고 싶지 않대. 그러니까 잘하는 당신이 이 곡을 계속 연주 했으면 좋겠어.’ 라며 나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열심히 박수쳐 준다. 이러한 고용주의 칭찬은 결코 나의 연주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이도 중의 곡을 통해 나도 성장하고 이 곳에서 더 아름다운 곡들이 울려퍼지게 해야지’라는 나의 다짐이 참으로 무색하게 된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 할 때. 연습하며 실력을 쌓아갈 때.


나는 지금의 나를 ‘초보 연주자’로 정의한다. (이제껏 한 두 가지의 곡들을 연주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 곡들은 내가 진짜 연주하고 싶은 곡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다시 나 스스로를 초보 연주자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초보 연주자로서 내가 연주할 곡을 매일 구체화하고 있다. 일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어머니에게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설명하고 그 분의 의견을 구하고 있으며, 일 평생 함께 해갈 나의 약혼녀와 함께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이 당신과 함께 어떻게 화음을 만들게 될 것이고, 당신과 어떤 곡을 합주하고 싶은가’를 토론하며 연주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어떻게 곡들을 연습하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왜 사랑하지 못할까’를 고민하는데 시간을 쏟기 보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나만의 연주와 매일매일의 과정을 통해 그들을 더 ’사랑하고’ 싶다. 그들의 지지 속에서 새로운 곡을 연습하고 나만의 주법을 완성하고 싶다.



마침내 나의 곡들이 나만의 주법으로 연주되는 그 때. 


먼 훗날 자녀들에게 나의 연주를 들려주리라. 초보 연주자 때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나누어 주리라. 

나의 주법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되었고 나는 어떻게 전문 연주자가 되어왔는지 들려주리라.

나의 연주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느끼게 하리라.

많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자신의 악기를 어떻게 다루어 가야하는지, 자기 안에 숨겨진 아름다운 곡들을 마침내 연주하게 하리라.


“잘했다. 너의 악기를 열심히 갈고 닦고, 많이 연습하고 참 따듯한 곡들을 많이 연주 했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곡을 연주할 때, 내가 네게 맡은 사람들에게 너의 주법을 알려주고 그들의 연주를 응원할 때, 그 모든 연주들이 이곳 하늘에서도 울려 퍼졌단다. 그리고 나는 네가 이곳에서도 그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마침내 나는 나의 오래된 악기를 품에 안고 그 분의 따스한 음성을 듣고 싶다. 내 모든 마음과 실력을 다해 그 분 앞에서 나의 악기를 연주하리라.